뉴질랜드 시작
2006년 3월 임신 2개월인 저는 신랑과 함께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저와는 달리 신랑은 호주에서 살아본 경험이 이었죠.
오클랜드에서 지내면서 이곳 생활에 대해 정보도 모으고, 영주권 취득 방향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클랜드는 번잡하고 한국사람도 많았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구밀도가 적은 도시로 가야 워크비자나 영주권신청이 용이한지라 신랑은 소도시를 찿고 있었습니다.
마침 일자리가 타우랑가에서 생기더라구요. 오클랜드에서 차로 2시간 반정도 걸리는곳입니다. 이곳 슈퍼마켓의 청소를하는
일이었습니다.
2명이 한개의 슈퍼마켓을 맡아서 하는데 4개의 슈퍼마켓이라 8명의 사람을 데리고 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신랑은 청소로
해서 워크비자나 사업비자를 신청할까 생각했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근데 이민법은 그나라의 이익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거라 더 안전한 쪽인 장기부족직업군의 일을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튼 타우랑가를 내려와 보았는데 인구 십만이 조금 넘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국사람이 많이 없는것도 좋았구요. 그래서 내린 신랑의 결정은 타우랑가에서 청소를 시작은 하는데 비자를 위한 일자리는 처음부터 생각해놓은 용접쪽으로 찿아보기로요.
2006년 5월 두달의 오클랜드 생활을 마치고 타우랑가로 내려왔습니다. 청소를 하면서 엔지니어링이나 용접일을 찿아보았는데 영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곳 상황도 잘 모르고 인맥도 없으니 힘든건 당연했죠. 그래서 신랑은 학교를 생각했습니다. 그당시 1년 코스의 폴리테크닉 용접코스를 다니면 영주권 신청시 학력점수 50점이 플러스되는데 이게 마음에 들었죠. 어차피 청소를 계속 할 생각 이었으니까 1년 학교다닌다고 해도 크게 부담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 타우랑가의 폴리테크닉에는 당시 6개월코스의 용접과만 있었죠. 다른 도시에는 1년 과정이 있었는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학력점수를 뺀다고 해도 잡오퍼 1년이지나면 60점, 나이점수 30대중반이었으니까 25점, 오클랜드 외 지역 10점 플러스, 배우자 잡오퍼 10점, 1년 일하고나면 경력점수(용접을 막 시작하는거라 경력이 전혀 없음)...
용접이 부족직업군이었으니까 100점만 넘으면 오클랜드가 아니라는 잇점도 있고 1년만 일하고 나면 열에 아홉은 영주권 받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신랑 2006년 7월에 학력 점수는 못 받지만 6개월코스의 폴리테크닉에 입학했죠. 관광비자에서 학생비자로 전환된겁니다. 바쁜 나날이었죠. 청소에 학교에... 그래도 태어날 애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임신 20주 정도에 초음파를 찍었는데 아들이라고 말해 주더군요.
나오자마자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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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자는 동안 잠깐 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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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에 아빠되었습니다.